이경어린이 자신이 이충희 최승돈 박성훈 조혜련 최란 아침마당 명불허전 가수 특집

>

>

이경어린이출생1964년 11월 18일(55세), 서울특별시학력송곡여자고등학교 졸업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학사 졸업데뷔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소속뉴에이블엔터테인먼트가족배우자 김용선, 딸 김희서​

>

1983년에 연극배우 첫 데뷔했고, 이듬해인 1984년에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정식 데뷔하였다.​한편, 1993년 SBS로 이적한 후 한동안 SBS에서만 활동해 왔다가 1994년 후반기부터는 MBC로 활동영역을 넓히기도 했으며, 1997년 을 통해 친정인 KBS에 돌아오기도 했는데 1999년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에 다소리늦게 입학했습­니다.​세바퀴 여성 고정 출연자들의 단톡방이 있어 매일 연락하고 모임을 자주 갖는다고 합니다. ​수상 1984년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 대상1990년 제4회 KBS 코미디 대상 여자 연기상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예능상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1996년 백상예술대상 연예상

>

이충희(李忠熙)생년월일1959년 11월 7일 (60세)국적대힌민국출신지강원도 철원군출신학교인천 송림초 – 송도중 – 송도고 – 고려대대가족배우자 최란 슬하 2녀 1남병역병역특례포지션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신체 사이즈182cm, 79kg, B형프로입단1981년 현대전자 입단소속팀현대전자 (1981~1992)대만 홍커우 (1992)​

>

별명은 슛도사, 神射手(신사수). 전성기에는 이충희라는 이름이 곧 슛과 동의어였을 정도로 최고의 슈터였다. 일명 korea 농구 역사상 손꼽히는 득점 기계이자 가장 위대한 슈터.​하지만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은퇴 후 감독을 맡았을 때는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전형적 예시로 ‘멍충희’, ‘돌충희’ 소음를 들었을 정도로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

창원 LG 세이커스 퇴진 다음 2001년에 SBS 해설위원으로 데뷔하여 1시즌간 맡다가 고려대학교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2004년 10월부터 2006년까지 SBS 해설위원으로 복귀했습니다.​아내는 탤런트인 최란으로, 부부가 같이 CF를 찍은 일도 몇 번 있고, 이충희의 유명세 때문에 그당시 결혼은 대단히 화제가 되었다. 또한 최란은 남편의 악플이자신 악성댓글 관련해서 아주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지라 오리온스 시절이자신 동부 시절 이충희 감독을 까던 팬들이 전부 얄짤없이 고소로 처벌받아서 농구 갤러리에서는 그를 까는 일이 절대적 없다.

>

최승돈(崔承燉)출생1969년 (51세)출생지강원도 강릉시신체178cm종교개신교(장로회)소속KBS 아자신운서실 대힌민국어연구부학력대광초등학교용문중학교상문고등학교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카디프 대학 언론학 석사데뷔1994년 KBS 20기 공채 아자신운서식구아내 이지영(중앙일보 기자)슬하 1남 1녀​

>

KBS의 아나쁘지않아운서로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94년 공채 20기로 입사했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KBS 제주방송총국을 거쳐 여러 교양프로와 운동 중계를 담당하고 있다. 운동 중계석을 시작으로 비바 월드컵(비바 K리그의 전신), 《날아라 슛돌이》, 《퀴즈 한국》 등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프로그램을 맡아 인지도를 쌓아왔다.​2000년대 들어서는 거진 운동 전문으로 활약 중이었다 영국 카디프 대학 재학 그때 축구에 빠져 살았으며 KBS에서도 운동, 축구 전문 아나쁘지않아운서이기도 하다. 김현태 – 최승돈 – 이재후 – 이광용 아나쁘지않아운서로 이어지는 KBS 운동 캐스터 라인의 최선참급 아나쁘지않아운서. 영국 유학파 출신이라 국내 EPL팬의 원조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 피버피치의 한국어 판에 추천사가 있을정도…​

>

>

그 동안의 어록을 소개해보자면,”국민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그러나쁘지않아 기쁨의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흘리셔도 좋습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 우생순 시즌1.​”제가 여기서 이런 경기를 왜 중계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선수를 기용하는 것도 좋은 소견임니다. 세상이 어느정도나쁘지않아 가혹한지 가르쳐줘야 하거든요.”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핸드볼 중동 편파결정 경기​”여러분, 언니들의 졸업식을 함께해 주십시오! 20년 동안 올림픽에 나쁘지않아왔던 언니들의 졸업식이 1분 남았습니다.” –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3-4위전. 우생순 .​”그동안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더 이상 스포츠는 신성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왜 잘못됐다고 인정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인류의 비극임니다.” –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에페 4강전​”여러분은 이 경기를 보고 싶으십니까. 신아람 선수는 이 경기를 하고 싶겠습니까. 저라고 이 경기를 중계하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신아람 선수를 흔히 내버려 두고 여기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신아람 선수도 본의 아니게 다시 피스트에 올라섰습니다. …신아람 선수의 3, 4위전 경기를 본의 아니게 중계 방송 해드리겠습니다.” –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에페 3-4위전​이로 인해 화제에 오르면서 밝혀진 또다른 사실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중계 해오면서 금메달 획득과는 인연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올림픽만 1996 애기틀랜타 올림픽부터 중계했거늘… 최승돈이 중계하는 경기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오심이 나쁘지않아와서 분통터지는 귀취이 연출되거나쁘지않아, 극적인 승리나쁘지않아 패배로 국민들의 눈물을 쏟게 만드는, 그야내용로 눈물을 부르는 경기들이었다. 이쯤 되면 온 국민의 멘탈을 들었다놨다 하는 행정부대표 축구 경기를 맡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소소견야 할 정도다.​하지만 2012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개인 사브르 김지연 선수의 금메달 획득을 중계하게 되면서 노골드 징크스를 씻어내게 된다. 이 이후부터 안습으로 점철되어 있던 그의 중계사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

>

박성훈(1951년~ )은 대한민국의 대중 노래 작곡가이자 트로트 히트 메이커이었다​박성훈은 1951년에 태어나서 1976년 부터 작곡 활동을 해 왔다.​1976년 부터 대한민국의 많은 대중 가요들을 작곡했는데, 〈내 감정 별과 같이〉, 〈사랑은 나비인가봐〉, 〈싫다 싫어〉, 〈최고다 당신〉, 〈촌락난 벽시계〉, 〈날 버린 남자〉등 많은 히트곡을 작곡했읍니다.​작곡가 박현진, 이호섭 등과 같이 대한민국의 많은 대중 가요 트로트를 작곡하며 트로트를 활성화 시킨 장자신이었다​

>

전국음악자랑에서 심사를 걸출하게 잘 봐서, 딩동댕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올해로 작곡 경력 43년을 맞이했습­니다.​2016년부터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박성훈과 함께 하는 “창녕 양파 가요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

조혜련 (趙惠蓮)출생1970년 7월 2일(음력 5월 29일) (50세)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국적파일: 국기.png 대한민국신체158cm, O형소속사루체엔터테인먼트소가족1남 7녀 중 5녀. 어머니 최복순(1942년생),언니 조성혜(1962년생), 조명혜, 약 간희, 조남둘(1968년생),여동생 조혜숙(1973년생), 조은화, 남동생 조민준(1978년생)자녀장녀 김윤아(2000년생)장남 김우주(2002년생)학력명학초등학교안양여자중학교안양여자고등학교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한양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언론전공 석사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대학원 신학전공 박사과정데뷔1992년 《KBS 대학 개그제》​’울엄마’라는 코댁에서 아들 서경석을 둔 가난한 미혼모로 나쁘지않아와 서경석과 함께 히트를 누렸다. 그 차후에는 여장부 스타일의 개그를 주로 구사했으며 KBS의 여걸파이브나쁘지않아 여걸식스로 활약했읍니다. MBC의 코미디하우스에서 골룸 분장을 했는데, 원래 패널들을 웃기는 다양한 설정을 해놓고서 억지로 웃음을 참게 하는 ‘웃지마’라는 코댁에서 엄청난 분장 싱크로율과 괴기스러운 표정 연기 때문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1집 아나쁘지않아까나쁘지않아의 수록곡 와 은 KBS 심의에 걸려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조혜련 본인은 예능에서 “수준미달로 심의에 걸렸다”라고 하는데 이건 예능용 멘트일 현실성이 높고, 그당시 기사를 보면 가사 중간중간 저속한 포현이 있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김국진, 금병완과 한 팀을 이뤄 응시했으나쁘지않아 1, 2차 시험 통과 후 3차 개인선발시험에서 혼자 떨어지면서, 4차 최종 대학개그제에는 김국진, 금병완이 출전해서 수상했고 그녀는 데뷔에 실패했읍니다.​그 충격에 가출하고 과자 공장에 취직한 뒤 일을 하다가 다시 개그맨의 꿈을 키워 1993년, KBS 청춘 스케치에서 1등을 하여 KBS 10기 개그맨[7]으로 입사하게 된다. 따라서 2년정도 KBS에서 활동했지만, 실질적으로 주목받은 개그맨 활동은 95년부터 MBC에서 더 많이 했읍니다[8]. 90년대 중반, MBC ‘오항상­그랬듯은 좋은날’이라는 개그 프로에서 이경실, 이윤석, 김진수, 서경석 등과 프로그램을 이끌었다.​차후 개그 활동 뿐만 아닌 방송 활동, 드라마, 영화, 도서 출판, 강연,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만능 엔터테이댁로 자리잡았었다.

>

>

최란(崔蘭)본관화순 최씨출생1960년 11월 30일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혈액형O형학력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데뷔1979년 동양방송 21기 공채 탤런트가족배우자 이충희 슬하 2녀 1남소속대한민국 서울문화예술협회 이사장​대한민국의 배우이며 미스 춘향으로 방송가에 첫 발을 내딛었다.​180억대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연예계의 부동산 부자로도 유명하다. 제19대 총선에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신청하였으나 비례대표 번호를 받는데는 실패했읍니다.​최근 음반을 내며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는데 예명으로 홍춘이라 지었다.​이 정도만 보면 그저 훌륭한 커리어를 갖춘 중년 여배우 중 한 명으로 기억되기 쉬우나…​

>

김가연과 더불어 연예계 고소의 끝판왕으로 유명하다. 전 농구선수 이충희의 아내이기도 하기에 이충희에 대한 악플이 달리는 걸 늘 모니터링 하고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 자문도 구합니다고 합니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는 이 명성이 워낙 높아 최란이라면 벌벌 떨 정도다. 더불어 경중 안따지고 봐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합의는 절대로 해주지 않으며 형사 고소가 마무리되면 민사까지 걸어버린다고…

태그: